관광지 소개 (히바)
관리자 2007.06.23 10:04 1946

히바

현대에서 과거로...

 

기원전 4세기 경, 아랄해 남쪽, 중앙아시아의 서부지역은 호레즘의영토였다

호레즘이란 '태양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번영을 구가하던 호레즘 왕국은 징키스칸과 티무르에 의해 거푸 정복되면서

왕국은 물론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후에 우즈벡이 이 호레즘 지역을 다스리게되면서, 역사 2천년의 고도 히바가 재건되어

오늘이 이르게되었다

 

히바는 크게 2개의 성벽으로 둘러싸여져있는데 디샨칼라라는 외벽이있고, 그 안쪽에

이찬칼라라는 내성이있다

이찬 칼라안에는 히바의 왕이 집무한던 쿠냐 아르크와 타쉬하울리 궁전이 볼만하다

칸의 거처이자 집무소였던 이 궁전은 중세기 건축의 기념비적 건축물로서 뛰어난 목각장식과 녹청백 3색의 타일로 쌓아  올린 꿈같은 아름다움으로 가득차있다

멀리 혹은 가까이 서 있는 미나레트들이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도시전체가 하나의 공개된 박물관인 히바의 내성속에는 이 밖에 파클라반 마흐무드 영묘

(1835년 재건),알라쿨리카나 (1855년 재건, 대상들의 숙소) 마흐무트 아민 칸 메드레세와

칼타 미나르 미나레트(1835년 재건), 쥬마사원 및 미나레트 등 어디를 보나 볼 거리이고

감탄을 자아내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있다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는 1852년 재건을 위해 착공한 후 3년 만에 공사가 중단되어 지금까지 미완으로 있지만, 아름다운 청백의이 광탑은 키바의 스카이라인에 극적인 액센트를 준다. 그리고 쥬마 사원은 무려 218개의 목각 기둥 장식이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키바의 바자는 화려하고 다채롭기로 소문이 나 있다. 휴일에는 줄타기 곡예도 벌어진다. 옛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히바를 보아야 한다. 히바에는

호텔이 없다. 그러므로 관광객은 키바에서 북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우르겐치 시에 있는  호텔을 이용하여야 한다.

 

히바로 가는 교통편도 역시 타쉬켄트를 기점으로 하여 비행기나, 버스 등을 이용하여 일단 우르겐치에 이른 다음, 여기서 다시 히바로 버스나 승용차 편을 이용하여야 한다.

 

우르겐치에서 히바까지 가는 버스는 매시간 출발하며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히바(Хива)

 


1. 아타 다르바자 (서문)

2. 무함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
3.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

4. 쿠냐 아르크

5. 세이트 알라우딘 묘
6. 쉬르가지 칸 메드레세

7. 이슬람 홋자 메드레세와 미나레트

8. 주마 모스크와 미나레트

9. 히바와 노예시장


1. 아타 다르바자 (서문)

 

이찬칼라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에 혁명 후 혼란으로 파괴되었지만 1970년에 복원되었다. 문은 2개의 미나레트 같은 탑으로 지어졌고 문을 두른 성벽에 선물상점과 가이드 사무실이 있다. 이곳에서 이찬칼라의 입장권(2006년 2월 현재 외국인은 5,000숨)을 구입할 수 있다. 이찬칼라는 입구가 많아서 다른 입구를 통해 입장권이 없이도 둘러볼 수 있으나,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이찬칼라 내(? 모든 박물관 및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만약 입장권이 없으면 각각의 장소에서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미리 구입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

2. 무함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 

 

서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무함마드 아민 칸이 건설을 지시 1852년에 완성했다.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학교였다. 신학교로써 뿐만 아니라, 건물의 벽이 매우 두껍고 튼튼해서 이슬람 최고재판소의 사무국 겸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2층의 건물에는 120개의 방이 있고 히바에서 처음으로 신학생을 위해 방을 주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12세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며, 15년이 기본 코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하면 5년 만에도 졸업을 하기도 했다. 정면 입구와 건물 앞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1977년부터 현재까지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3.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 

 

서문을 들어서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푸른 타일로 덮힌 아름다운 미완성의 미나레트로 1852년에 착공되어 3년 후인 1855년에 미완성 된 상태로 중단되었다.
미완성이기때문에 여러 가지 전설이 남아 있다. 무함마드 아민 칸이 108m의 높고 멋진 미나레트를 지어 약 400Km 떨어진 부하라 마을을 감시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안 부하라의 칸이 탑의 기술자를 매수해 공사를 중단시켰는데, 이에 화가 난 아민 칸이 부하라로 도망을 가던 기술자를 사막에서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까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아민 칸이 1855년에 이란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중단된 것이라고도 말한다. 기단부의 직경은 14.2m이기 때문에 만약 완성이 되었으면 70m에서 80m의 높이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26m에서 중단된 채 있다. 덧붙여 칼타는 ‘짧다’라는 뜻이다.

4. 쿠냐 아르크

 

‘오래된 궁전’이란 뜻의 17세기(1686-1688년)에 지어진 칸의 궁전으로 이찬칼라 내에 새로운 궁전이 생긴 뒤 구별을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궁전의 입구 왼쪽에는 죄인들을 처형하기 전에 가둬두었던 감옥이 있는데 미니어처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마당에 작은 우물이 있는데, 한 모금 마셔보면 짠 맛이 난다. 몸에 좋다고 한다. 전체가 성벽으로 요새처럼 둘러싸여 있고, 궁전 안에는 칸에 의해 지어진 집무를 위한 공저, 휴게실, 모스크, 하렘 등이 있고 병기군, 화약공장, 조폐소도 있었다. 이 조폐소에서는 비단돈이 만들어졌던 때도 있었으며, 현재 그 당시의 지폐와 돈을 만드는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쿠르니쉬 칸의 아이완(각종 의식이 행해졌던 곳)은 17세기에 지어졌지만 이란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의 것은 19세기초에 지어진 것이다. 2개의 높은 기둥이 있는 테라스의 벽면은 칠보타일로 덮혀 있고 천장은 적, 황, 녹, 흑색 등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옥좌 사이에 있다. 안뜰에는 손님이 왔을 때에 유루타를 지었던 둥근 토대가 있다.
마지막으로 궁전의 전망대에 올라가 보자. 이찬칼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칸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입구 광장에서는 병사의 퍼레이드를 행하거나 죄인의 처형대가 있었다.

5. 세이트 알라우딘 묘

이찬칼라에서 가장 오래된 묘로 12C에 만들어졌다. 생전에 ‘흰색의 지도자’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았던 그는 현재에도 히바인들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결혼식 등의 기쁜 일이 있을때는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한다. 구 소련시절에는 병기고와 탄약고로 쓰였었다.
내부를 보면 관이 2개가 있는데 오른쪽은 알라우딘의 관이며, 왼쪽은 묘를 설계했던 기술자의 관이라고 한다. 훌륭한 지도자의 묘에 함께 안장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그래서 기술자도 스스로 희망을 했다고 한다. 물론 함께 안장될 정도로 자신 또한 신망을 받아야 한다.

6. 쉬르가지 칸 메드레세

 

1718년 쉬르가지 칸이 원정에서 데려온 노예들에게 짓게 했던 신학교로, 칸은 노예에게 메드레세가 완성이 되면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세상사 약속을 잘 지키는 통치자는 드문 법. 쉬르가지 칸은 약속을 어겼고, 계속해서 강제 노역으로 괴로운 생활을 하던 노예들은 참다못해 칸의 머리를 자르고 도망갔으며, 칸은 이 메드레세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그후 보수공사가 없었고, 노예들에 의해 많이 파괴가 되어 외관이 단순하고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7. 이슬람 홋자 메드레세와 미나레트 

 

히바 최후의 칸인 이스판디야르 칸의 대신인 이슬람 홋자에 의해 1910년에 지어졌기 때문에 히바에서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 홋자는 아주 개방적인 인물로 러시아나 유럽을 자주 방문한 후 자국으로 돌아와 유럽식의 학교, 병원, 우체국 등을 지었으며, 새로운 도로와 다리를 건설하여 히바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하지만 너무 외래문물을 받아들이려 했기 때문에 보수파의 반대와 음모로 살해당했다. 혹자는 사막에 생매장되었다고도 한다. 현재 메드레세의 앞 건물은 최근까지 통역사를 양성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었다. 메드레세는 타일로 장식된 정면 입구가 있지만 대칭은 아니다. 마당도 크지 않으며 1층에는 42개의 방이 있으며, 2층에는 입구들뿐이다.
미나레트는 히바에서 가장 높은 45m이며, 기단부 직경은 9.5m이지만 색타일 모양의 장식으로 실제보다는 높게 보인다. 밖의 계단을 올라 미나레트 내부의 99개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좀 힘이 들지만 꼭 한번 올라가 보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멋진 풍경이 눈앞에 들어올 것이다. 멀리 사막도 보인다.

8. 주마 모스크와 미나레트 

 

주마 모스크는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 중의 하나이며, 한번에 5,000명이 예배를 볼 수 있다. 10세기에 지어졌지만 여러 번의 재건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말경이며, 약 3m 간격으로 213개의 기둥이 있다. 각 기둥들 마다 화려한 조각과 천정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신비감을 더해주며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기둥의 조각은 하나하나가 각기 다르며, 가장 오래된 기둥은 예전의 호레즘 수도에서 옮겨온 것인데 약 1,000년이 되었다고 한다.

9. 히바와 노예시장
히바가 도시가 되고 나서 마을에는 큰 노예시장이 생겼다. 1740년 페르시아의 나지라 지반베기에 의해 마을은 파괴, 약탈당했고, 이찬칼라의 건축물도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완전하게 재건되었다. 그 사이에도 중앙 아시아 최대의 노예시장은 쇠퇴하지 않고 그 명성이 남아 있다. 19세기초부터 러시아는 러시아인 노예의 해방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했었고, 1873년 드디어 히바를 전면 항복시켜 노예시장도 없어졌다. 당시 파견된 대좌 등의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인 노예는 3,000명 정도였으며, 그 이외 약3만 명의 노예가 있었고, 체력이 강인한 러시아인 노예는 낙타 4마리에 팔려 나갔다.
또 역대의 칸들은 ‘공포 통치’를 했고 고문과 처형을 민중 앞에서 행했으며, 당시 금지되었던 흡연과 음주의 죄를 범한 자는 입을 귀까지 찢어 마치 언제나 실실거리며 웃는 얼굴을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처형방법도 본보기를 위해 출혈사가 많았다고 한다.



관광지 소개 (부하라)
우즈벡 장기 체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