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소개(사마르칸트)
관리자 2007.08.31 16:19 3599

 

 

중앙아시아 최고의 문화.예술도시

 

인구 39만명인 우즈벡의 제2의도시 사마르칸트가 바빌론이나 로마와 같은 시대에 건설된 유서 깊은 도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마르칸트는 타쉬켄트보다도 500여 년전이나 앞선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드 대왕, 사라센 제국 , 징기스칸,티무르 제국등 이땅을 점령했던 모든 영웅들을 맞이했던 도시이다

그 결과 사마르칸트는 이란,인도,몽골의 자취가 남아있고 여기에 약간의 유럽적 풍모까지 갖추고 있다.특히 14~15세기 이 지역을 지배했던 티무르왕은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로마"로 키우고자 했다

해발725m의  고원 사막평원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철도교통의 중심지이다

농산품, 가공업, 피혁공업, 방적공업이 발달해 있지만, 과거유적의 복원 청소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2500년을 자랑하는 고도의 영화가 차츰 되살아나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마르칸트를 완벽하게 둘러보려면 적어도 2,3박은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신비하게 바뀌는 도시의 색깔을 감사해야 한다.

사마르칸트는 이 도시를 건설한 티무르가 푸른 색을 좋아했기 떄문에 시 전체가 푸른 색조를 띠고 있다. 이 푸른 도시가 저녁 노을을 받아 빛나는 광경은 참으로 압권이다.

원래 옛날의 사마르 칸트는 현재 이 도시의 서북쪽 구릉 지대인 이프라샤프 언덕에 있었고 그 성각의 4대문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나 티무르 시댕 도시가 번성하면서 이 언덕의 남서쪽에 현재의 구 시가지가 생겼고,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그 남서쪽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마르칸트 호텔을 경계로 그 남서부 지역이 신시가지이고 그 북동쪽은 구시가지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이 구시가지에서 다시 타쉬켄트스카야 거리를 올라가면 이프라샤프 언덕이 된다. 사마르칸트 호텔을 기점으로 할떄 아프라샤프 언덕까지는 걸어서 30~40분 걸린다. 이처럼 사마르칸트는 면적상으로 작은 도시이므로, 시간여유만 있다면 걸어서 관광을 하는것이 훨씬 좋다.

아프라샤프 언덕에서 동쪽으로 30분정도 걸으면, 울르크 베크 가 1428년에 축조했다고 한다. 울르크 베크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에 비견되는 현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천문대는 세우자마자 파괴되어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높이 40m 나 되는 관측 돔이 있었다고 하며, 시관과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였는데 오늘날과 약 1분정도 밖에 오차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마르 칸트의 명소로는 우선 시햐진다 (살아있는 왕) 를 들수 있다.

여기에는 티무르제국 역대 실력자들의 묘 11기가 자리잡고 있다.

그 다음은 레키스탄 광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메드레세들이다. 레기스탄은 '모래광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광장에서는 왕에대한 알현식이나 공공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광장 왼쪽에는 티무르의 손자 울르크 베크가 지은 메드레세(1420년 완공) 가 있고, 오른쪽에는 우즈벡 영주 바하도르가 세운 시륻르('용맹한 사자'라는뜻) 메드레세 (1636년 완공), 광장 중앙에는 역시 바하도르가 1660년에 왕공시켰다는 틸라캬리('금색으로 도금한 뜻) 메드레세 등이 둘러 서 있다

그다음으로는 구르 에미르(지배자의 묘'라는 뜻)  영묘인데, 이곳은 티무르 제국긔 지배자들인 티무르,울르크 베크,마흐무트 술탄 등 역대 군주 가족들의 묘가 들어 있다

사마르칸트로의 여행은 타쉬켄트에서 비행기로 약1시간, 거리로는 270km 정도다

 

 

 

 

 

 

 

 

 

♣사마르칸트(Самарканд)의 명소

 

1. 레기스탄 광장 
2. 울루그벡 메드레세 

3. 쉬르도르 메드레세 

4. 틸라카리 메드레세

5. 비비하님 모스크

6. 루하밧 묘

7. 구르에미르

8. 샤히진다

9. 아프라샵 역사박물관
10. 울루그벡 천문대의 터

 

 

1. 레기스탄 광장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란 뜻으로 옛날에 모래로 뒤덮힌 사막이었다고 한다. 공공의 광장으로 왕의 알현식, 공공집회, 죄인의 처형 등이 행해졌다. 티무르 시대에는 대규모 노천시장이 있었으며, 그의 후손인 울루그벡 시대에 처음으로 메드레세가 세워졌으며 메드레세의 맞은편에 하나카가 있었다. 광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진 것은 그후 샤이바니 왕조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다른 2개의 메드레세가 건립된 이후이다. 3개의 메드레세가 건립된 이후 레기스탄 광장은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로써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그후 구소련 시절에는 이슬람 종교의 탄압으로 다시 거대한 노천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이슬람 교육의 장소도 아니고, 노천시장도 아닌 관광지로써 제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은 왼쪽에 위치한 건물이 울루그벡 메드레세, 중간이 틸라카리 메드레세, 오른쪽이 쉬르도르 메드레세이다.

2. 울루그벡 메드레세

 


레기스탄 광장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1420년 울루그벡에 의해 세워졌으며,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울루그벡은 왕이자 학자로써 이름을 떨쳤는데 직접 이슬람 신학에서 수학, 철학까지 강의했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그 시대 학문의 중심지로써 약 100명의 학생들이 생활을 하며 공부했었다. 처음에는 신학교로 출발했으나 후에는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의 연구소로도 이용되었다. 천문학자로써 유명한 울루그벡을 상징하듯 외관의 문양은 하늘의 푸른 별을 형상화하였다.

3. 쉬르도르 메드레세 

 

광장의 오른쪽에 위치한 메드레세로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200숨짜리 지폐의 모델 문양이 그려져 있는 유명한 메드레세이다. 쉬르도르는 ‘사자가 그려졌다’라는 뜻으로 입구 아치에는 어린 사슴을 쫓는 사자(사자보다는 호랑이에 훨씬 가깝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부하라의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의 것과 같은 사람얼굴 형상의 태양도 그려져 있다. 본래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지만, 간혹 그 시대의 왕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금령을 깨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쉬르도르 메드레세를 설계하고 감독한 건축가는 메드레세가 완성되자 무슬림으로서 이슬람 교리를 어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4. 틸라카리 메드레세 

광장에 정면으로 보이는 메드레세로 1647년 쉬르도르 메드레세를 세운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급히 세워진 메드레세이다. 쉬르도르 메드레세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문양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에 수 많은 무슬림들의 불만을 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양식으로 더욱더 화려하게 이 메드레세를 건축하였다.
틸라카리는 ‘금박으로 된’이라는 뜻으로 메드레세 안으로 들어가 좌측편 푸른돔 아래의 예배당을 보면 그 이름이 어울림을 알 수 있다. 벽면과 천장을 모두 금빛으로 장식을 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다. 천장의 돔 모양을 보면 둥글게 보이나, 사실은 푸른색 부분부터는 세밀한 표현으로 둥글게 보일 뿐 사실은 평면이다.

5. 비비하님 모스크 

 

타키가 위치한 사거리에서 일명 ‘사마르칸트의 브로드웨이’로 불리는 길로 약 100m쯤 걸어서 내려가면 좌측으로 중앙아시아 최대규모의 모스크인 ‘비비하님 모스크’를 볼 수 있다.
‘비비하님’은 8명의 왕비 중 아미르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로 그녀의 이름을 딴 모스크이다. 현재는 수리가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예전의 거대했던 위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스크의 넓이는 가로?세로가 100m가 훨씬 넘어 축구장 이상의 넓이였으며, 예전에는 입구 아치의 옆에 80m높이의 어마어마한 미나레트가 있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푸른 지붕의 큰 모스크와 작은 모스크가 있으며, 중앙에는 거대한 코란을 올려놓았던 받침대가 덩그런히 서있다. 이 받침대는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이 몽골에서 직접 가져왔으며, 현재 코란이 없음에도 현지인들 사이에는 인기가 대단하다. 왜냐하면 기도를 하면서 받침대 주위를 돌면,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를 하면서 받침대 주위를 도는 젊은 남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6. 루하밧 묘 

 

아프라샵 호텔과 구르에미르 사이에 위치해 있는 티무르 스승의 묘이다. 맞은편의 구르에미르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할 정도로 화려함이 없이 단순하다. 묘의 내부 또한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아 허술하다. 하지만 어떤이들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구르에미르 보다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무슬림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가기도 한다.

7. 구르에미르 

 

‘구르’는 묘, ‘에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구르 에미르는 “왕의 묘"라는 뜻으로, 아미르 티무르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손자 등이 잠들어 있는 티무르 왕족의 묘이다. 푸른 도시라 불리는 사마르칸트에서도 한층 더 푸르름이 돋보이는 장대한 건축물이 아닐까 한다.
원래 이 장소는 티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을 위해 건설된 메드레세와 하나카가 있었는데, 그러나 1405년 오트라르 원정에서 무하마드 술탄이 전사를 하자, 티무르는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장소에 묘를 건설했는데, 불과 10일만에 묘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묘는 1404년에 완성되었지만 1년 후 중국원정 중에 급사한 티무르 자신도 이곳에 묻히고 만다. 티무르는 원래 자신의 고향인 샤흐리샵스에 잠들길 원했고, 그곳에 묘도 조성을 했었다. 그러나 살아서는 세상을 호령했던 왕이었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뜻대로 이루질 못했다.
현재 티무르의 손자가 건립한 메드레세와 하나카는 그 터만 남아있으며, 묘만 화려한 모습으로 서있다. 묘 내부는 1996년 수리가 완료되었고 건설 당시의 아름다움도 돌아왔다. 내부를 둘러싼 문양에는 금 3Kg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티무르의 묘는 흑녹색의 연옥(중국산이라고 한다.)으로 만들어졌고 중앙에 놓여져 있다. 그 북쪽에는 티무르의 선생, 손자 한 명, 동쪽에는 무하마드 술탄, 남쪽에는 울루그벡, 서쪽에는 가까운 쪽부터 아들 샤루흐, 이름모를 손자, 아들 미란샤의 묘석이 나란히 있다. 이것은 모두 묘의 위치를 표시한 묘석으로 진짜 관은 이 지하 3m에 있는 묘실에 같은 순서로 묻혀있다. 그리고 항상 머리는 메카 방향으로 안치되어있다.

8. 샤히진다 
아프라샵 언덕의 남쪽에 있는 사마르칸트 제일의 성지이다. 이슬람 종교지도자, 순교자를 비롯한여 티무르 왕족 사람들의 영묘가 일직선으로 세워져 있는 특별한 곳으로 지금도 순례를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각 영묘마다 그 장식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 뛰어나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으며,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타일의 색채 또한 예술이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보이며, 이 계단을 올라가면 영묘들이 줄지어있다. 골목을 따라 맨끝까지 들어가면 쿠산 이븐 앗바스의 영묘가 있다. 샤히진다는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으로 7세기 아랍의 침략 때 생겨난 전설이 근원이 되고 있다.
포교를 위해 사마르칸트를 찾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사촌형 쿠산 이븐 앗바스는 이곳에서 예배를 하던 중 조로아스타 교주에게 습격을 당해 목을 잘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예배를 마치고는 자신의 목을 깊은 우물로 가서 넣어버리고는 사라졌다. 무슬림들은 그는 영원의 생명을 얻었으며, 이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을 위해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9. 아프라샵 역사박물관

 

아프라샵 언덕 아래 자리잡은 흰색 건물의 작은 박물관이다. 알렉산더 대왕시대의 동전을 시작으로 조로아스타교의 제단과 우상 아프라샵 언덕에서의 출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두고 있다.
전시물 중 최대의 볼거리는 7세기 영주의 궁전에서 발견된 사절도 일 것이다. 7세기 바흐만와의 치세 중 이곳을 방문한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그린 벽화이다. 특히 벽화에는 조우관 을 쓴 삼국시대 신라 사신들의 모습도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7세기 대당 전쟁의 절박한 상황에서, 내륙아시아 국가들과 동맹을 추구하던 삼국시대의 조정의 외교 노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갔을 때 정면의 벽화 오른쪽 하단에 보면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한 두 명의 사신이 보인다. 그들이 신라의 사신이라고 한다. 현재 채색이 많이 벗겨져 그 형태만 겨우 보인다. 현지에서 발행되는 문헌에는 ‘고구려의 사신’이라고도 한다. 정확히 어느 나라의 사신인지 직접 확인해 보시라...

10. 울루그벡 천문대의 터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로 사마르칸트의 황금기를 지배했던 위대한 왕이자 학자였던 울루그벡의 천문대이다. 아프라샵 언덕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정도 가면 울루그벡의 동상이 보인다. 그 뒤 언덕에 천문대의 터와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천문대의 기초만 남아있는데, 이전에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거대한 천문대였다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그때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사진과 미니어쳐가 있으며, 그 시대의 천문관측기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의 관측을 바탕으로 울룩벡은 항성시 1년간을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추측했다. 이는 오늘날의 정밀기기로 계산되어진 365일 6시간 9분 9.6초에서 오차는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망원경도 없는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한 수치가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랄 따름이다. 또 1,018개 별의 궤적을 기록했던 그의 천문표는 후에 콘스탄치노프에게 도망친 제자에 의해 출판되어 울루그벡의 이름을 널리 세계에 알려졌다. 그의 명성은 역사 속에서 전설로만 전해져오다가 1908년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에 의해 땅에 묻혀있던 천문대의 터가 발굴되면서 그 존재가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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